[이 아침에] 일출봉에서 본 일몰 풍경
제주도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표선에 내렸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성산포가 멀지 않은 곳이다. 바다가 지척이다. 하긴 섬 어느 곳인들 바다가 지척 아닌 곳이 있겠는가. 스님이 마중 나오셨다. 광주 대각사 주지 스님, 수년 전 이곳에 명상원을 개원하여 수행 중인 분이다. 저녁나절 스님과 같이 성산포 일출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일출봉에서 보는 일몰 광경이 어떨까. 입장료를 받고 있다. 지역 주민과 노인은 할인을 해주는 모양이다. 일출봉 오르는 길이 아기자기하다. 가파른 길이 나무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멀리 성산포 읍이 보인다. 숨이 차다. 오르는 길을 멈추고 잠깐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조개구름이 가득하다. 아름답다. 고개 숙이고 앞만 보고 올랐다면 놓칠 뻔했던 절경이다. 해가 설핏해서일까. 내려가는 사람은 많은데 오르는 사람은 드물다. 일출봉 정상에 올랐다. 드론 포함 일출봉 내 촬영을 금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무엇 때문일까.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 뜨는 장면으로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서 일몰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까는 조개구름이 일렁였는데, 지금은 붉은 기운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순간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온통 붉게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이다. 장관이다. 동쪽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온종일 걸어간 해님이 안식을 위해 잠시 몸을 숨기는 순간이다. 세상이 서서히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휴식을 취한 다음 내일 아침 동쪽 어느 바다나 산 위로 불끈 솟아오를 것이다. 빛은 가고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깔리면 인간은 반항을 시작한다. 눈에 불을 켜고 어둠을 이기려고 한다. 보라, 저렇게 한집 또 한집 어둠을 비집고 등불이 일어서지 않는가.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은 인간이 어둠을 이기고 있는 현장이다.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불씨를 만들어 냈다. 깜깜한 세상을 몰아내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불을 훔친 신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던가. 프로메테우스 덕택에 저렇게 성산포 읍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인간이 신을 이겨내고 있는 현장이다. 멀리 섬 하나가 보인다. 우도라고 한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바다 가운데 어선 몇 척이 떠 있다. 집어등을 켜놓고 고기를 잡는 모양이다.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고기를 유혹한다. 찰나에 생사가 결정된다. 세상은 서로를 유혹하면서 살아간다. 꽃이 벌 나비를, 장사꾼이 손님을, 정치인은 유권자를…. 어두워져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어둠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저들뿐이랴. 빛과 어둠은 늘 함께한다. 세상의 이치다. 계단을 더듬어 천천히 내려왔다. 깜깜하다. 10여 미터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이다. 제주 첫날 일출로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서 일몰 풍경을 만끽했다. 앞으로는 ‘성산 일몰봉’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파도의 숨결이 잔잔해지는 시간. 바다가 잠잠하면 세상이 잠잠하다. 바다는 그걸 모른다. 바다만 모른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일출봉 일몰 성산포 일출봉 성산 일출봉 일출봉 정상